오늘은 오래간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미세먼지가 많은 점은 아쉬웠지만 따뜻한 햇살 아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른 가족들의 모습도 보고, 꽃구경도 하고, 참새들도 보면서 휴일다운 휴일을 보냈습니다.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약 3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많이 회복되었다고 느껴지는 요즘 무언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황증상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약 3년 전쯤 다음 날 업무를 위해서 일요일 오후에 혼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공황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가슴을 무언가로 꽉 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아, 이게 공황증상이구나"하면서 급하게 동생에게 약을 가져다 달라고 겨우 전화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던 동생이 약을 가져다주었고, 약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증상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제가 맡고 있던 업무가 스트레스가 상당한 업무였습니다. 늘 긴장을 하고 있어야 했으며, 휴일에도 온전하게 쉬지 못하고 늘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기에 잠시도 마음이 편하게 쉬지를 못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다른 직원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편이었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였기에 일어난 증상이 아닌가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공황증상을 겪고 난 후, 병원을 다니기 위해 예약을 했지만 약 2개월의 대기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로 보낼수는 없었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녔지만 상담은 없고, 증상에 따른 약 처방만 해주는 병원이었습니다. 다행히 처방해 주는 약을 먹으면서 공황증상이 심하게는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냥저냥 2개월을 버티면서 근무했습니다.
첫 공황증상 후 2개월만에 본격적인 치료 시작
첫 공황증상 경험 후 2개월만에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그간 제 속에 쌓여있던 것들을 꺼내면서 제 증상의 원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치료를 진행하면서 그간 어렴풋이 생각해 왔던 일들이 제 증상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상담치료를 시작할 당시, 저는 스트레스가 극심한 업무와 함께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심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수시로 오는 전화와 카카오톡을 통한 폭언과 협박이 이어졌고, 제가 휴대폰을 받지 않으면 제 사무실 직통전화는 물론 옆 직원에게까지 전화를 걸고, 사무실로 찾아와 망신을 주겠다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었고,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였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 그리고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인사이동이 있어서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근무하던 부서는 비록 업무는 스트레스가 많은 자리였지만 나름 인정받는 자리였는데, 특별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상황에서 다른 부서로 근무지를 옮겼는데, 그 부서로 처음 출근하는 날, 또 제 자리로 그 괴롭힘의 전화가 온 것입니다. 솔직히 너무 절망스러웠습니다. "평생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부서와 업무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이제 그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말로만 듣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저에게 했던 일들을 곱씹어 보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고 그게 맞는 건가 보다 하면서 살았던 제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간 그 사람이 저에게 해왔던 폭언을 녹음했던 내용의 녹취록,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내용 등 제가 제대로 된 일상을 살지 못한다는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하고 법원에 찾아가 접근금지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는 마음으로 법원을 찾았고 솔직히 발걸음이 많이 무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던 그 사람의 접근과 연락을 막아달라는 청구를 법원에 한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이게 정말 맞는 건가?'라는 의문과 혹시 법원이 청구를 기각하면 그 후에 괴롭힘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공존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피폐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진행을 했습니다. 약 두 달의 기다림끝에 법원에서 인용 판결이 나왔습니다. 30년이 넘게 이어졌던 그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도 그 사람은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직접 연락을 하거나 찾아오는 행동은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하고, 인용판결을 받은 그 순간부터 온전히 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회복되지 않는 마음, 낮아지는 자존감
눈앞에 있던 큰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도 좀처럼 제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팀에 근무하던 직원의 많은 배려가 없었더라면 더 힘들었겠지만, 그 직원에게 저의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사과한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노력을 다 하겠다고 했고, 혹시 부족하거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꼭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한 번 망가진 마음과 정신을 되돌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공황증상이 나타나고 그 때문에 약을 먹으면 멍해지면서 집중력도 흐트러져서 일하면서도 자꾸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게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그 직원은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더 미안했습니다. 그 당시 불면증도 심한 상태였는데 다행히 부서장님도 제 상태를 알고 배려를 해주셔서 겨우겨우 근무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일이 잘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전부 제 잘못인 것 같았고, 제 자신이 너무 무능한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그 동안 살면서 잘해왔다고 열심히 해 왔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제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무기력함은 사무실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억지로 괜찮은 척했지만 아마 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가족들도 느꼈을 겁니다. 그게 지금도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예정된 휴직, 여러 경험들
그렇게 옮겨갔던 부서에서 1년 여를 근무한 후,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20년이 넘게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일정기간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또 아이와 함께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휴직기간은 저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휴직 후 여유시간이 많아진 만큼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웬 자격증이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제 증상이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중할 때 오히려 괜찮아졌기 때문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그동안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본인의 몸이 그러한 상태를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 버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지만 오래된 습관을 버리기는 힘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휴직을 하게 되면 금방 몸과 마음이 좋아지고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울증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상담할 때도 이러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답변은 그동안은 본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않고, 눈앞의 일을 처리하기 바빠서 잘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휴직 후 눈앞에 닥친 일이 없어지자, 내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니 이 과정을 잘 견뎌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때 '아, 평생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휴직기간 중 6개월을 자격증 시험에 온전히 투자했고 그 결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 후의 느낌은 '아직까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공부하는 동안 계속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시험합격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어쨌든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큰 문제는 시험 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목표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죠.
최악의 우울증을 경험하다
시험에 합격 후, 정말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너무 두려웠고 다음 날 아침이 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아무 의욕도 없었고 하루종일 누워있고만 싶었습니다. 돌봐야 할 아이가 없었다면 정말 폐인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이 때 처음으로 1393(자살예방센터) 전화도 이용해 봤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하루에 몇 차례씩 떠올릴 만큼 안 좋은 시기를 보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봤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안 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고 거기에 빠져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러한 티를 내기 싫어서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는 억지로 웃음을 연기하며 생활했는데, 가족들이 다 나가고 나면 엄청난 피로감과 우울함이 몰려들었습니다. 정말 제가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때 약도 엄청나게 증량을 했지만 크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마 아이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을 할 때도 "제 아이가 제 멱살을 잡고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었으니까요.
회복의 시작
몇 달동안 죽을 것만 같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와중에, 문득 더 이상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했던 게 무엇이 저를 힘들게 하고 있는 지를 구체화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습니다.(사람마다 극복하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제 방법이 맞다는 게 절대 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 걱정거리와 힘든 점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적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종교의 힘으로 극복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 경험을 적은 것뿐이니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약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먹었습니다. 아침이 오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다음 날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현재 상태를 말씀드리면 불면증 외에는 크게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제 스스로도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회복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약 복용량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저도 알기에 무언가 팁을 드리고 싶은데, 특별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동안의 노력과 치료, 복용했던 약들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정상 며칠 약을 못 먹은 적이 있는데, 금단증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제가 회복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였습니다. 억지로 저를 꾸미지도 않았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약을 끊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지금은 "필요하다면 평생 먹어도 괜찮다. 약을 먹고라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라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최악의 우울증'을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이 위험한 건 바로 자살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를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졌기에 더 떨어질 곳이 없었고 역설적으로 이것이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지인이 가끔 저에게 상담을 하는데, 제가 가끔 하는 말이 '억지로 회복하려고 하지 마라'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시 의지를 갖게 해주는 건 억지로 끌어내는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한 우울증 증상은 '지금은 쉬어가야 할 시기'라는 걸 알려주는 알람과 같은 역할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막상 저의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쉽지 않네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울증은 조절할 수 있는 질병이고 나빠질때가 있으면 다시 좋아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좋아졌다가 다시 안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한 번 회복됐던 경험은 다시 제가 안 좋아졌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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