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뇌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납치·감금의 기억
얼마 전에 배우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여태껏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2학이던 시절에 바로 8시간 동안 납치·감금을 당했던 기억입니다. 원인은 가정불화로 인한 것이었고 가해 상대방도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서 신고 후 형사처벌을 받게 했겠지만, 당시에는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기억 속에만 묻어두었던 것이지요
당시 기억은 손을 뒤로 묶인채로 차 안에 8시간을 갇혀 있었습니다. 가장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순간은 제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손을 절대 풀어주지 않고, 저는 손이 뒤로 묶인 채로 그 사람이 제 바지를 내려 소변을 보게 했던 순간입니다. 너무나 굴욕적이었는데 왜 저는 그 사실을 한참이나 잊고 살았던 것일까요?
분노보다는 그저 덤덤한 나의 감정
병원에 갔을 때 이 사실을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뇌는 너무 힘든 기억이 있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떠올리지 않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떠올립니다."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어떤 감정이 느껴지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별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 가해자들은 지금 저보다 훨씬 못 살고 있고 심지어 한 명(두 명이 범행했습니다.)은 알코올성 치매로 자식에게도 버림받은 채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런 인간들에게 무슨 감정이 있겠습니까"라고 답을 했습니다.
솔직히 특별한 감정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두 가해자들은 언제라도 제가 무릎 꿇릴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복수를 한다 해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해야 기분이 풀리는 것이지, 이미 다 망가져버린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 봤자 그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그냥 살아가려고 합니다. 대신 딱 한마디는 기회가 될 때 해주고 싶습니다. "나 그때 기분 정말 더러웠다. 이 XXX야!"라고요. 그냥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미 그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고마운 나의 뇌 그리고 생존에 관한 강한 본능
이번 일을 겪으며 기억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주 많이 힘든 순간에 이 기억까지 떠올랐다면 아마 감당하는게 절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마음이 회복되었을 때까지 이 기억을 덮어준 덕분에 제가 겪어야 할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으니까요.
사람의 몸과 마음은 참 신기하다고 여겨집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생존에 유리한 상황을 본능적으로 이끄니까요. 이 것으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제 몸과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은 저의 건강한 생존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제 마음이 어떻게 변하든 제 몸과 저의 본능이 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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