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많이 여린 사람인데,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문득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내가 앓고 있는 우울증의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이유 말고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울증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제 병의 원인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결국은 그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은 것이 현재의 내 모습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
저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가정 내에서의 좋지 않은 환경이 제게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고, 결국은 과거의 그것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 오늘날의 제 우울증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저와 같은 과거를 가진 사람은 모두 저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모든 것을 잘 극복하고 정말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요?
위험한 생각이겠지만, 혹시나 지금의 제 모습을 제가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저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제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제가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왜 현재(행복)를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불행)에 지배당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스스로 선택한 모습인가?
저는 대학에 들어가고 난 후, 심리학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비록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책도 읽고 자료도 찾아보는 등 나름대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어찌 보면 좀 그렇기는 한데 바로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그 분'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특히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 심리학자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원인론이 아닌 목적론을 주장한 학자로,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이론을 들고 나왔던 학자였죠.
아들러 심리학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책을 꼽으라면 바로 '미움받을 용기'일 것입니다. 물론 아들러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아들러 심리학을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고, 저도 이 책을 읽은 후 그간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통념이 깨지는 느낌을 받았을 만큼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합니다.

나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단 하나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세상이 어떤 곳인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묘사할 것입니다.
애당초, 사람은 이 세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든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며, 그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을 묘사할 것입니다.
파란색 안경을 쓴 사람에게 이 세상은 파란색으로 보일 것이고, 노란색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노란색으로 보일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외부 정보에 대해 '선택과 판단'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같은 것을 보더라도 절대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산 위에 올라 같은 곳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구름을 볼 것이고, 어떤 이는 나무를, 어떤 이는 산 너머의 바다를 보고 있다면 모두 느끼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저 역시도 어떤 안경을 쓴 채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느껴 왔을 것이고, 그것이 저를 불행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안경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런 모습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저는 왜 이렇게 세상이 힘들어 보이는 안경을 선택한 채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제 자신을 마치 비극 속의 주인공처럼 만들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취해 낸 것'이라는 자기만족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제 스스로가 '바쁜 삶 속에서 잠시 쉬어갈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 스스로의 과거를 불행했다고 여기며 트라우마를 이용한 우울증이라는 병을 만들어 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너무 억지스러운 것 아니냐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껴지니까요.
그동안의 생각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잠시나마 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우울증의 늪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제 욕망이 만든 새로운 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답을 찾는 여정 자체가 정답은 아닐까?
제 과거와 현재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습니다.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불행한 점은 무엇인지, 또 행복한 것은 어떤 것인지를 나열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아쉽게도 제가 찾는 정답은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찾는 정답은 제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제가 왜 이 모습을 택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계속 고민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비록 정답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정답을 찾아가는 그 여정 자체가 저에게 새로운 생각과 힘을 줄 것이라 믿고 있으며, 그것이 이 병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그저 그 여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제 자신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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