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log...

024. (v)우울증인 나는 어떻게 공부할 수 있었지? 자격증 취득 후기

반응형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저는 2022년 한 해를 안식년으로 보냈습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2년 넘게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특별히 좋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만 몸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앞선 포스팅에서 잠깐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제 우울증의 원인은 30년도 넘은 케케묵은 것이라 치료가 쉽지 않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치료를 시작한 시기가 너무 늦었죠.


그래서, 3월부터 1년짜리 휴직을 신청하고,  저에게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면서부터 20년 넘게 쉼 없이 앞만 보며 달렸던 저에게 갑자기 찾아온 휴식은 너무나도 낯설었지만 한 편으로는 마치 방학을 맞이한 학생의 마음도 있었습니다.


1년 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만 했기에,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첫 한 달은 편했습니다. 직장 생활에 지쳐있던 몸을 쉬게 해 주고, 아침에 산책을 하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여유로움이 오래가지는 않고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동안 가지고 싶었던 자격증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딱 시험이 6개월 남은 시점이었죠.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공부하는데 몰입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 마치 고3인 것처럼 보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고, 아이를 데리고 놀러 다녀온 날에도 잠자기 전에는 꼭 강의를 보고 난 후 잤습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높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 직장의 입사시험 이후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험날이 다가왔고, 기분 좋게 합격한 후 자격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자격시험이었냐고요? 네, 공인중개사 자격증입니다.


당장 사무실을 개업할 게 아니었기에, 기분 좋게 자격증을 받은 후 지금은 책장에 잘 꽂혀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정말 좋았습니다. 우울증이 오면 집중력과 학습능력도 저하된다는 데 어쨌든 해냈으니까요.(근데 수험서는 보겠는데, 일반 책은 정말 못 읽겠더라고요. 어떻게 공부했는지 저도 신기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 후 우울증 증상이 급격히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고 거의 누워서만 지냈습니다. 운동도 해 보려고 했고 산책도 나가고 싶었지만 집 앞에 나가는 일이 너무나도 힘들게 느껴져서 그저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최대한 괜찮은 척하면서 지냈지만 아마 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게 너무 미안하네요.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목표로 하던 자격증도 취득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심각해지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험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갔나 봅니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새벽 2시까지 강의를 듣고, 책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을 붙들고 생활했습니다. 배우자가 눈치를 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애써 무시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공부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잡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의 평화가 느껴졌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최근 몇 주는 그나마 좀 편해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운동도 하고 있고요. 그동안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제가 좋아하는 일도 함께 하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아마 이번 자격증 취득을 통해 제가 얻은 건 자격증도 있겠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사례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