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온달 옆에 평강공주가 없었다면? - 거울 자아(Looking Glass Self )
우리말로자아’ 혹은 ‘자기’라고 번역되는 ‘셀프(Self)’란 무엇일까요? 셀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한번 형성되면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갈대와도 같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일까요? 셀프는 하나일까요? 아니면 여러 개일까요?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이런 모습의 셀프가, 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저런 모습의 셀프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찰스 호턴 쿨리(Charles Horton Cooley)는 19세기 말에 활동한 미국의 사회학자입니다. 그는 대인관계 속에서 자리 잡아가는 셀프의 역동을 추적하였고, 이를 ‘거울상 자아(Looking glass self)’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 개성이 다르다 보니, 특정한 상대는 내 모습 중 특정한 모습만을 보게 되고 또 내게 특정한 모습을 기대합니다. 한번 이러한 패턴이 굳어지면 우리는 그가 나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파악하게 되며, 무의식중에 그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행동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나의 이미지를 나 스스로 흡수하여 내 셀프의 일부분으로 삼게 됩니다.
여기 앞에 오목거울이 있다고 칩시다. 여기에 모습을 비춰보면 키가 훌쩍 크게 보이지요. 그런데 매일 아침마다 이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본다면, 본인이 실제로 키가 큰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될지 모릅니다. 심지어 길을 다닐 때도 목을 쑥 내밀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한 채 다닐지도 모르지요. 이렇듯 남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그 모습을 내 실제 모습으로 흡수하는 것, ‘거울상 자아’란 이런 현상을 가리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아서 비먼(Arthur Beaman) 등은 글자 그대로 거울을 갖고 이 가설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미국의 핼러윈 날에는 아이들이 귀신이나 유령처럼 분장한 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사탕이나 쿠키를 받아 가는 풍습이 있습니다. 연구진들은 실험에 참여한 집 앞에 쿠키가 잔뜩 들어 있는 그릇을 놓은 후, 집주인에게 아이가 오면 이렇게 맞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름이 뭐지? 아, 그래. 아줌마가 지금 몹시 바쁘니까 쿠키 딱 한 개만 집어 가렴.”
그러곤 아줌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쿠키를 몇 개 가져갈지는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겨집니다.
단, 연구진들은 실험에 참여한 18개의 주택 중 9개에만 거울을 설치해서 아이가 자기 모습을 비춰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과연 거울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예상대로 많은 아이들이 지시를 어기고 쿠키를 두 개 이상 집어 갔지만, 거울을 설치해 놓은 집에선 이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지키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쿠키 하나만 집어 가라고 했던 집주인 아주머니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았던 것입니다. 거울을 통해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내재화했고,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쿨리에 의하면 어린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내재화함으로써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고 합니다. 또한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의 시각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며, 반은 의식적으로 반은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주관이 강하고 셀프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있는 사람은 훨씬 정도가 덜하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혼란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아마 블로그를 쓰던 당시의 저 자신도 정체성 찾기의 와중에 있었나 봅니다.
이러한 원칙을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는 내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바보 온달 곁에 평강공주가 없었다면 그가 국가에 큰 공을 세우고 장렬히 전사할 수 있었을까요? 나를 비춰주는 사람, 그리고 나를 조각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라봐주는 내 모습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게 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지금 절실히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의 눈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세요. 그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던 과거에는 당신의 숨겨진 모습을 그분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셨겠지요.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셀프는 바로 그분의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곁에는 누가 그런 분이신지요?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마음 토닥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2.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 고슴도치 딜레마 (0) | 2023.05.25 |
---|---|
101. 강요된 팀워크의 부작용 - 고립 효과 (0) | 2023.05.22 |
099. 감정없는 냉혈한은 더 건강할까? - 감정표현 불능증 (0) | 2023.05.18 |
098. 내면의 목소리, 내면의 지혜 -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 (0) | 2023.05.16 |
097. 각인(Imprinting) - 첫사랑, 이루어지면 안되는 사랑 (1) | 2023.05.14 |